>
| 2025.12.07 목장 나눔 자료 | 심주형 | 2025-12-09 | |||
|
|||||
[성경본문] 고린도전서11:26-32절 개역개정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합당한 성찬식 고전11:26-32 2025.12.7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가히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새벽 기도회는 물론이고 방송과 유튜브까지 더하면 우리는 일주일에 열 번이 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신학자 존 스토트 목사님이 한국 교회를 방문했을 때 지적했듯, 우리에게 뜨거운 ‘열정’은 있으나 그에 걸맞은 ‘삶의 성숙’은 아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설교를 많이 듣는 것이 믿음의 척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듣는 목적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내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 변하는 데에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 없는 지식은 도리어 타인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도구가 될 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설교를 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 빈 배 위에서, 산 위에서,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그 주옥같은 설교를 듣고도 좀처럼 변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말로 하는 설교 대신 ‘몸으로 보여주는 시청각 설교’를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최초의 성찬입니다. 빵을 떼며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잔을 나누며 “이것은 죄 사함을 위한 언약의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식탁에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밥을 먹고도 불과 몇 시간 뒤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쳤습니다. ‘듣는 것’과 ‘먹는 것’ 자체만으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역사입니다. 제자들이 진정으로 변화된 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였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들이 기억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예수님이 떼어주신 빵과 잔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목숨을 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변화된 제자들은 초대교회를 이루며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빵과 잔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성찬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서로를 더 깊이 섬기겠다는 ‘사랑의 다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그토록 강하게 책망한 이유도 바로 이 ‘사랑’이 식탁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성찬은 식사를 겸했는데, 부유한 성도들이 먼저 와서 음식을 다 먹어버리고 취하는 바람에, 늦게 일을 마치고 온 가난한 성도들은 굶주리고 소외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배려가 없는 식사, 가난한 형제를 부끄럽게 하는 성찬은 주님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죄입니다. 분열과 차별이 있는 곳에 합당한 성찬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합당한 성찬’입니까? 첫째는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우리를 위한 최고의 섬김이었습니다. 우리가 떡과 잔을 대할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나도 주님처럼 내 옆의 지체를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둘째는 자기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도덕적으로 얼마나 완벽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과연 형제를 사랑했는지, 내가 낮아져서 섬겼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제자들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낮아지셔서 떡을 떼어 주셨습니다. 성찬대 앞에 설 때 우리는 한없이 부끄러운 존재들입니다. “나는 합당하지 않은데 먹어도 될까?”라는 주저함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찬은 우리가 완벽해서 받는 상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를 위해 주신 은혜의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다만, 습관처럼 먹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회개하고 “이제는 주님의 사랑으로 살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며 먹어야 합니다. 오늘 이 성찬이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삶을 사랑과 섬김으로 변화시키는 거룩한 능력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
|||||
댓글 0